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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온달은 바보가 아니었다 날짜 2013.09.27 00:00
글쓴이 건설뉴테크 조회/추천 573/18

** 온달은 바보가 아니었다 **

 

역사의 진실은 언제나 수수께끼처럼 모호하다. 사료가 미미한 고대사일 경우, 더구나 얼마 되지 않는 사료의 내용이 사실보다는 설화적일 때 진실은 더욱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바보 온달’ 역시 그렇다.

온달이 바보로 고착화된 데는 <삼국사기>에 실린 ‘온달전’의 내용이 결정적이었다.

먹을 것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고 해진 옷을 입었던 ‘바보 온달’과 공주의 결혼 그리고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온달이야기를 설화로 각색시켰다. 온달에 대한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 머릿속을 맴돌던 궁금증은 이러했다.

정말 온달은 바보였나? 온달은 정말 이 땅에 살았을까? 평강공주와의 사랑도 진실이었나….

온달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흔적은 서울의 아차산 혹은 단양의 온달산성에 남아 있다.

1400년 전 온달은 고구려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출정했다가 장렬히 전사했으며 평강공주와의 사랑 또한 사실이다. 온달은 열정적인 사람이었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고구려의 귀족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한 실마리 역시 삼국사기의 ‘온달전’에 있다. 말하자면 온달의 유일한 기록은 설화성과 사실성을 겸비한 것이다.

‘고구려는 삼월 삼짇날이 되면 낙랑 언덕에 모여 사냥을 하는데 온달이 항상 앞에 있었고,

잡은 짐승 또한 으뜸’이라는 구절은 고구려의 풍습이었던‘동맹’을 나타낸 것이며, ‘후주의 무제가 군대를 내어 요동을 치니 온달이 선봉이 되어 크게 이겼다.’는 구절 또한 당시 고구려의 국제정세를 나타낸다.

온달전의 마지막부분에서 ‘양강왕이 즉위함에 미쳐 온달이 대왕께서 군대를 주신다면 우리 땅을 되찾겠습니다’라는 내용은 온달이 고구려 6세기에 살았음을 증명한다.

온달 신화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수천 년 동안 변치 않고 우리에게 손짓하는 ‘항구성’은 무엇일까“ 내가 본 온달은 당시 모든 사람이 ‘현재의 가치’에 안주하고 있을 때, 스스로 인간 보편적인 진실에 발을 담근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온달은 그가 살았던 시대를 건너뛰어 현재까지 살아 수천년 동안 우리에게 친근한 ‘바보온달’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실제 인물이었으되, 설화 속에 모습을 감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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